정서적 고통, 신체적 고통 못지않게 강력한 공포기억을 만든다
사람들은 흔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공황장애가 교통사고, 자연재해, 폭력 등 강력한 신체적 충격 이후에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충격만으로도 사람의 뇌는 극심한 공포기억을 형성하고, 이 기억은 때로는 신체적 고통보다 더 깊고 오래 지속됩니다. 최근 KAIST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은 바로 이 '정서적 고통'이 뇌에 공포기억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연구는 2025년 5월 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되었고, KAIST는 15일 이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정서적 고통이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라, 신체적 고통처럼 특정한 뇌 회로를 통해 기억으로 남는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사고가 나지 않아도, 무섭다고 느끼는 순간 공포기억은 새겨진다
공포기억은 단지 실제로 위협을 겪은 경우에만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충돌하지 않았지만 사고가 날 뻔한 상황, 또는 미디어에서 본 끔찍한 장면 하나만으로도 뇌는 '위험했다'는 공포를 기억합니다.
연구팀의 제1저자인 한준호 KAIST 연구원은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집 강아지 ‘레고’는 오토바이를 무서워합니다. 부딪힌 적은 없지만 오토바이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떱니다.” 이 사례는 실제 신체적 충격 없이도 ‘공포기억’이 형성된다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정서적 공포기억이 만들어지는 뇌의 경로는 따로 있다
그동안 뇌과학계에서는 공포기억 형성을 연구하면서, 전기자극과 같은 신체적 고통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이러한 자극이 뇌의 외측 팔곁핵(PBN)으로 전달되어 공포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PTSD 환자들이 겪는 공포는 대부분 정서적 자극에 기반합니다. 이번 연구는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정서적 공포기억 형성 경로, 즉 시각적 위협에 반응하는 뇌 회로를 세계 최초로 밝혀낸 성과입니다.
실험: 포식자의 위협을 느끼는 쥐를 통해 본 공포기억 형성
연구팀은 기존 전기자극 대신, 맹금류가 하늘에서 덮치는 것 같은 시각적 자극을 활용했습니다. 천장 스크린에서 빠르게 커지는 그림자를 구현하면 쥐는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회피 행동을 보입니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신체적 고통 없이도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며, 공포기억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특히 대뇌의 후측 대뇌섬엽(pIC)이 외측 팔곁핵(PBN)과 직접 연결되어 정서적 자극을 전달한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입니다.
pIC–PBN 회로, 정서적 고통에 특화된 공포기억 경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쥐가 시각적 위협을 경험하면 pIC에서 PBN으로 신호가 전달되고, 이 경로가 공포기억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연구팀은 이 회로를 화학유전학과 광유전학 기법으로 정밀 조절해 실험한 결과, pIC–PBN 회로가 활성화되면 쥐는 공포기억을 형성하고, 반대로 회로를 억제하면 공포기억이 줄어들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회로가 정서적 고통에만 반응하며, 전기자극과 같은 통각 자극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정서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은 뇌에서 완전히 다른 경로로 처리된다는 것입니다.
정신질환 맞춤형 치료법 개발의 단서가 되다
이번 연구는 정신질환의 치료 패러다임에 큰 전환점을 제시합니다. PTSD,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은 대부분 정서적 고통에서 기인하며, 단순히 뇌 전체의 과활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특정 회로가 관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이 회로를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정밀 치료가 가능해집니다.
한진희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공포기억의 형성과 저장이 단일 경로가 아닌 복수의 경로를 따른다는 사실을 밝힌 중요한 진전”이라며, “향후 정서적 고통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뇌 치료법 개발에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기억해야 할 점
이 연구는 일상적인 경험에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사람들은 종종 “별일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무서웠어?”라고 말하곤 하지만, 뇌는 실제 물리적 고통보다 ‘느낀 고통’을 더 중요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적인 충격 또한 회복이 필요하며, 그 자체로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정서적 고통을 우습게 보지 말고, 스트레스나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면 심리적 상담이나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무리: 공포기억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번 KAIST의 연구는 공포기억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닌, 신경과학적으로 입증된 생물학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PTSD 등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정서적 고통이 과소평가되지 않고, 그에 맞는 치료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참고 링크
- KAIST 생명과학과 공식 홈페이지: https://bio.kaist.ac.kr
-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원문 링크: https://www.science.org/journal/sciad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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