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발진에서 생명 위협까지…무서운 자가면역질환 ‘루푸스’
대표적인 만성 자가면역질환인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SLE, 이하 루푸스)’의 새로운 치료 길이 국내에서 열렸다. 루푸스는 외부 병원균이 아닌, 자신의 면역체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가면역 반응으로 인해 피부를 비롯해 폐, 신장, 심장, 뇌 등 주요 장기에 광범위한 염증과 손상을 유발하는 난치성 질환이다.
질환의 초기에는 늑대에 물린 것처럼 보이는 붉은색 피부 발진이 주로 얼굴에 나타난다. 특히 코 위를 중심으로 퍼지는 나비 모양 발진은 루푸스를 대표하는 초기 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루푸스’라는 이름도 라틴어로 늑대를 의미하는 ‘루푸스(lupus)’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이 질환은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니다. 증상이 진행되면 관절염, 발열, 피로감, 우울증, 체중 감소, 신장 기능 저하까지 이어지며, 심할 경우 장기 손상으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전신 질환인 만큼 ‘천의 얼굴을 가진 병’으로 불리며, 진단과 치료 모두 까다롭다.
CAR-T 세포 치료, 루푸스에 국내 첫 적용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센터 주지현·이봉우 교수, 혈액병원 윤재호 교수팀은 올해 3월 루푸스 환자에게 면역항암제의 일종인 CAR-T 세포 치료제를 국내 최초로 투여했다고 밝혔다.
대상자는 표준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장기 손상이 진행 중이던 40대 여성 환자다. 해당 환자는 2009년 임신 중 루푸스로 진단된 이후 고용량 스테로이드 및 면역억제제를 꾸준히 사용했지만, 루푸스 신장염은 관해 상태에 이르지 못했고, 부작용으로 무혈성 골괴사까지 겪었다.
이 환자는 신장 기능이 악화돼 말기신부전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컸으며, 기존 치료법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CAR-T 세포 치료가 시도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치료목적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투여가 진행됐으며, 이는 루푸스 치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연 사례로 평가된다.
혈액암 치료제로 개발된 CAR-T, 자가면역 질환으로 확장
CAR-T 치료는 환자의 혈액에서 T세포를 채취해, 유전적으로 암세포 혹은 비정상 세포의 항원을 인식하도록 ‘키메릭 항원 수용체(CAR)’를 주입한 뒤, 이를 체내에 다시 주입하는 첨단 면역세포 치료다. 백혈병, 림프종 등 혈액암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루푸스의 경우 B세포가 자가항체를 생성하고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핵심 세포로 작용한다. CAR-T 치료는 이러한 비정상 B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자가면역 반응을 억제하고 질환의 근본적 조절을 기대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최근 CAR-T를 활용한 루푸스 치료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던 난치성 루푸스 환자에게 CAR-T 세포 치료를 적용한 결과, 질병 활성도가 관해에 도달했다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치료 효과 확인…부작용 없이 면역억제제 중단도 가능해져
CAR-T 치료를 받은 서울성모병원 환자는 3월 투여 이후 4월 외래 진료에서 부작용 없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면역억제제를 중단했음에도 루푸스 관련 주요 지표인 단백뇨, 보체, 항DNA 항체 수치가 모두 호전되었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주치의인 주지현 교수는 “기존 약제에 반응하지 않는 루푸스 환자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매우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하며, “이러한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CAR-T 치료의 적용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재호 교수 역시 “혈액암 환자에게 축적된 CAR-T 치료 경험이 이번 루푸스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됐다”며, “향후 다학제 협력을 통해 난치성 자가면역질환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고 전했다.
마무리: 난치성 자가면역질환, 치료의 지평이 넓어진다
루푸스는 환자의 삶을 크게 위협하는 복합적 자가면역질환이다. 특히 피부 발진에서 시작해 장기 손상으로 이어지는 중증 환자에게는 강력하고 근본적인 치료법이 절실하다. 이번 CAR-T 세포 치료의 국내 첫 적용은 루푸스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다학제 협진과 창의적 치료법 개발은,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았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향후 CAR-T 치료가 더 많은 자가면역질환 환자에게 확대 적용될 수 있도록 정책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서울성모병원 CAR-T 치료 안내 https://www.cmcseoul.or.kr/page/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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